난초는 난과식물의 총칭으로 그 종류가 매우 많다. 여기서 말하는 난초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재배되는 난초속(蘭草屬) 식물을 말하는데 춘란(春蘭), 혜란(蕙蘭), 건란(建蘭), 한란(寒蘭), 묵란(墨蘭), 연판란(蓮瓣蘭), 춘검(春劍) 등을 가리킨다. 이러한 품종들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중국란(中國蘭)’이라고 한다.

중국의 난초는 매우 인기 있는 관상용 화훼이다. 수천 년을 거치면서 독특한 향기, 빼어난 자태, 사계절 푸름을 잃지 않는 절개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중국의 난초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난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2000년 전에 쓰인 《역계사(易繫辭)》에 ‘동심지언 기취여란(同心之言 其臭如蘭: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이라는 명구이다. 옛날에 말하는 난초가 바로 지금의 난초와 같을지는 모르지만 중국의 난초 재배 역사가 매우 오래 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바가 없다. 단순히 역사적인 기록으로 보자면 현재 공인된 중국 난초 재배의 역사는 당나라부터 시작된다.


唐朝末年唐彦谦在《咏兰》诗中赞曰:“清风摇翠环,凉露滴翠玉。美人胡不纫,幽香蔼空谷。谢庭温芳草,楚畹多绿莎。于焉忽相见,岁晏将如何。”从这首五言诗所描写的植物特征看,应当就是兰属植物中国兰花。唐末杨夔在《植兰说》载:“或种兰荃,鄙不遄茂。乃法圃师,汲秽以溉。而兰荃洁净,非类乎众莽。苗既骤悴,根亦旋腐。”这是迄今所知对兰花栽培方法最早的记述。另外,关于兰花栽培方面的记载还有王摩诘关于“贮兰用黄瓷斗,养以绮石,累年弥盛。”之说;郭橐《种树书》“种兰蕙畏湿,最忌洒水”等等,由此可见盆栽养兰,在唐朝已经盛行。

당나라 말기 당언겸(唐彦謙, ?~893年)은 《영란(詠蘭)》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난초를 칭송하고 있다.

清風搖翠環(청풍요취환), 청풍이 푸른 미인의 옥고리를 살랑살랑 흔드는데

凉露滴翠玉(양로적취옥)。차가운 이슬방울 푸른 난엽에 떨어지네.

美人胡不紉(미인호불인), 미인은 어찌 (이 구슬을) 꿰차지 않는가.

幽香藹空谷(유향애공곡)。그윽한 향기 빈 골짜기에 가득하거늘.

謝庭温芳草(사정온방초), 자식이 훌륭한 집안에는 어진 사람이 많고

楚畹多綠莎(초원다록사)。난초 동산에는 푸른 사초(沙草) 약초가 많다네.

於焉忽相見(어언홀상견), 갑자기 너를 보고 있으려니

歲晏將如何(세안장여하)。연말에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네.


이 시에는 난(蘭)이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표현하는 바의 속성을 보면 난초를 예찬하는 시임에 틀림이 없다.

당나라 말기 양기(楊夔)는 《식란설(植蘭說)》에서 이렇게 말했다.

或種蘭荃,鄙不遄茂。乃法圃師,汲穢以漑。而蘭荃潔凈,非類乎眾莽。苗旣驟悴,根亦旋腐。(난초와 창포를 심어보니 웬일인지 추하고 무성해지지 않는다. 묘원 관리인을 따라 씻기고 물을 주니 깨끗해졌다. 난초와 창포는 여러 화초와는 다른 면이 있다. 싹이 금방 시들고 뿌리도 썩어 들어간다.)

이것은 난초 재배방법에 관해 지금까지 알려진 중국 최초의 기록이다. 

이밖에도 난초 재배와 관련된 기록은 왕마힐(王摩詰)의 “貯蘭用黃瓷斗, 養以綺石, 累年彌盛。(저란용황자두, 양이기석, 누년미성: 누런 자기 그릇에 난초를 담아았다가 기석에서 키운 지 수년이 되니 무성해졌다.)”이라는 말이 있고, 곽탁(郭橐)의 《종수서(種樹書)》에는 “種蘭蕙畏濕,最忌灑水(종란혜외습,최기쇄수: 난초와 혜란은 습기를 싫어한다. 물을 바로 뿌려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난초의 재배가 당나라 때 이미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宋代国兰栽培益盛,艺兰专著面世。北宋黄庭坚在《书幽芳亭》中写道:“兰蕙丛出,莳以砂石则茂,沃以汤茗则芳,是所同也。至其发华,一干一花而香有余者兰,一干五七花而香不足者蕙。”在历史上首创了对兰蕙进行分类的先河。《本草衍义》对兰花的记载更为详细:“兰叶阔且韧,长及一二尺,四时常青,花黄绿色,中间瓣上有细紫点。春芳者为春兰,色浑;秋芳者为秋兰,色淡”。范成大在《次韵温伯种兰》中讲到“栽培带苔藓,披拂护尘垢。”,与现在种植翠云草装饰盆面,养护兰花,有异曲同工之妙。南宋末年,伴随着兰花栽培技术的长足发展,相继出现了两本最早的艺兰专著,即赵时庚的《金漳兰谱》(1233)和王贵学的《兰谱》(1247)。书中详细评述了福建、广东一带特产兰花的品种、栽培、施肥、灌溉、移植、分株、土质等方面的问题。这两部兰谱是我国也是全世界最早的兰花专著。

송나라에 이르면 난초 재배로 이익이 증가했고 난초예술에 관한 전문서적이 출현한다. 북송의 황정견(黄庭堅)은 《서유방정(書幽芳亭)》에서 “난초와 혜란은 뭉쳐나는데 모래땅에서 잘 자라며 영양분이 모이면 꽃을 피우는 것은 둘이 같지만 한 줄기에 하나의 꽃을 피우며 향이 진하면 난(蘭)이라고 하고 한 줄기에 5~7개의 꽃을 피우며 향기가 좀 모자라면 혜(蕙)라고 한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난초와 혜란을 구분한 기록이다. 

《본초연의(本草衍義)》에는 난초에 대한 더욱 상세한 기록이 보인다. “난초 잎은 넓고 질기며 길이가 1~2척에 달한다. 사계절 푸르며 꽃은 황록색이다. 중간의 화판(花瓣)은 작은 자주색 점이 있다.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은 춘란이라고 하는데 색이 흐리다. 가을에 꽃을 피우는 것은 추란이라고 하는데 색이 담담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범성대(范成大)는 《차운온백충란(次韻温伯種蘭)》이라는 책에서 “재배할 때 이끼를 덮어주어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한다.”고 하여 요즘 재배에 부처손으로 흙을 장식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방법은 다르지만 똑같은 효과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송 말기에 이르면 난초 재배기술이 장족의 발전을 이루는 것에 맞추어 난초만 전문으로 다룬 두 권이 책이 나오는데 조시경(趙時庚)의 《금장난보(金漳蘭譜)》(1233)와 왕귀학(王貴學)의 《난보(蘭譜)》(1247)가 그것이다.

이 두 책은 푸젠(福建), 광동(廣東) 일대 난초의 품종, 재배, 시비(施肥), 관개, 이식, 분주(分株), 토질 등에 대해 매우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 두 권의 난보는 중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가장 이른 난초 전문서적이 되었다.


元代之后,国兰莳养进入昌盛时期。元代孔静紊《至正直记》中除列述广东、福建兰花外,又提及江西、浙江一带兰花,并指出当时社会上已逐渐重视浙江兰花了。书中所言兰花“喜睛恶日,喜阴恶湿,喜幽恶僻,盖欲干不欲经烈日,欲润不欲多灌水,欲隐不欲处荒萝,欲盛而苗繁则败”,“有竹方培兰,即喜晴恶日,喜幽恶僻之意。”这些言简意赅对兰花习性和栽培要领的记述,影响深远,直到今天仍具有很高的参考借鉴价值。

원대 이후 중국의 난초재배는 창성시기로 접어든다. 원대 공정문(孔靜紊)의 《지정직기(至正直記)》에는 광동과 푸젠의 난초 이외에도 장시(江西), 저장(浙江) 일대의 난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에 이미 저장의 난초에 대해서도 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책에는 “맑은 날을 좋아하고 햇빛을 싫어하며 그늘을 좋아하고 습기를 싫어한다. 그윽한 곳을 좋아하고 구석진 곳을 싫어한다. 건조하게 하려고 햇볕을 쬐어서는 아니 되고 촉촉하게 하려고 물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그윽한 곳에 두려고 황무지에 두어서는 아니 된다. 무성하게 하려고 하지만 싹만 무성해지면 아니 된다.”는 기록이 있다. 또 “죽방(竹方)에 재배를 하기도 하는데 맑은 날을 좋아하지만 햇빛은 싫어하고 그윽한 곳을 좋아하고 벽진 곳을 싫어하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러한 기록은 내용은 간단명료하지만 난초의 습성과 재배요령을 잘 나타내주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明代艺兰著作更多。王世懋的《学圃杂疏》谈及养兰应隔奁置水以防虫蚁、鼠、蚓、蚁等侵入。李时珍在《本草纲目》中指出:“兰花亦生于山中,与三兰迥别,兰花生近处者叶如麦门冬而春花,生福建者叶如菅茅而秋花。”不仅把兰花和其它兰草的区别说明白了,而且也把春兰和建兰的区别指明了。明代高濂的《遵生八笺》(1591)收录了许多民间的养兰秘方,如“种兰奥法”、“培养四戒”、“雅尚斋重订逐月护兰诗诀”等。明代重要的兰花专著还有张应文的《罗篱紊兰谱》(1596),周履靖的《兰谱奥法》(1597)、鹿亭翁的《兰易》、簟溪子的《兰易十二翼》和《兰史》等。

명대에 이르면 난초에 관한 저작이 더욱 많아진다. 왕세무(王世懋)의 《학포잡소(學圃雜疏)》에는 난초를 기를 때 발을 치고 벌레, 쥐, 지렁이, 개미 등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시진(李時珍)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난초는 산에서 자라기 때문에 삼란(三蘭)과는 완전히 다르다. 난초 중에 가까이 자라는 것은 맥문동과 잎이 비슷하며 가을에 꽃이 피고, 푸젠(福建)에 자라는 것은 가을에 꽃이 핀다.”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난초와 다른 화초의 구별을 명확히 할 뿐만 아니라 춘란(春蘭)과 건란(建蘭)의 구별도 확실히 해 주고 있다. 명대 고렴(高濂)의 《준생팔전(遵生八箋)》(1591)에는 많은 민간의 난초재배 비방을 소개하고 있다. ‘난초 재배의 비법’, ‘난초 재배의 네 가지 계율’, ‘난초 시결(詩決)’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명대의 중요한 난초 저작에는 장응문(張應文)의 《나리문란보(羅篱紊蘭譜)》(1596), 주리정(周履靖)의 《난보오법兰谱奥法》(1597), 녹정옹(鹿亭翁)의 《난역(蘭易)》, 점계자(簟溪子)의 《난역십이익(兰易十二翼)》과 《난사(蘭史)》 등이 있다.


청대는 중국이 난초 재배가 가장 번성하던 시기였다. 

진호자(陳昊子)의 《화경(花鏡)》,왕호(汪灏)의 《광군방보(廣群芳譜)》에 난초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있다. 역대로 난초에 관한 저작과 새로운 품종이 계속 출현함에 따라 난초에 관한 전문가들도 한꺼번에 나타났다. 그들은 앞 사람들의 경험을 학습한 토대 위에서 그들이 참신한 견해를 담은 가치 있는 저작들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포미성(鮑薇省)의 《예란잡기(藝蘭雜記)》, 모양(冒襄)의 《난언(蘭言)》(1695—1709), 주극유(朱克柔)의 《제일향필기(第一香筆記)》(1796), 도용녕(屠用寧)의 《난혜경(蘭蕙鏡)》(1811), 오전운(吳傳沄)의 《예란요결(藝蘭要訣)》(1811), 장광조(張光照)의 《흥란보략(興蘭譜略)》(1816), 양복명(楊復明)의 《난언사종(蘭言四種))》(1816), 허제루(許霽樓)의 《난혜동심록(蘭蕙同心錄)》(1865), 원세준(袁世俊)의 《난언술략(蘭言述略)》(1876), 악량(岳梁)의 《양란설(養蘭説)》(1890), 원억강(袁憶江)의 《난언술략(蘭言述略)》, 구금책(區金策)의 《영해란언(嶺海蘭言)》 등이 이때 출판된 책들이다.

이중에서 포미성(鮑薇省)의 《예란잡기(藝蘭雜記)》는 처음으로 난혜판형학설(蘭蕙瓣型學說)을 주장했다. 또 원억강(袁憶江)의 《난언술략(蘭言述略)》에서는 장수성(江蘇省)과 저장성(浙江省) 일대의 난(蘭)과 혜(蕙) 중에서 매(梅), 하(荷), 수선(水仙), 소순판(素脣瓣) 등의 원예품종을 나열했는데 총 98종이 넘게 수록돼 있다. 

허제루(許霽樓)의 《난혜동심록(蘭蕙同心錄)》에는 난초에 관한 저작 중에는 처음으로 난초의 그림을 넣었는데, 전통적으로 유명한 난초의 그림은 모두 실어둠으로써 그 실용적인 가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20세기에 접어들어 비교적 유명한 난초 관련 서적으로는 오은원(吳恩元)의 《난혜소사(蘭蕙小史)》(1923), 우조(于照)의 《도문예란기(都門藝蘭記ㅍ》(1929), 하이빈(夏詒彬)의 《종란법(種蘭法)》(1930), 요육구(姚毓璆), 제우인(諸友仁)의 《난화(蘭花)》(1959), 엄초강(嚴楚江)의 《하문란보(厦門蘭譜)》(1964), 심연여(沈淵如), 심음춘(沈蔭椿)의 《난화(蘭花)》(1984), 오응상(吳應祥)의 《중국난화(中國蘭花)》(1991,1993) 등이 있다.

그중 오은원(吳恩元)의 《난혜소사(蘭蕙小史)》는 장수성(江蘇省)과 저장성(浙江省)의 난혜 중에서 이름이 전하지 않은 난초의 그림과 당시 성행하던 유명한 난혜의 사진을 싣고 난혜의 판형(瓣型), 재배관리 등에 대해 계통적인 서술을 하고 있어서 중국의 난초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상세하고 완정된 전문저작으로 손꼽힌다.

엄초강(嚴楚江)의 《하문란보(厦門蘭譜)》는 처음으로 난초의 형태에 대해 과학적인 방법과 묘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심연여(沈淵如), 심음춘(沈蔭椿)의 《난화(蘭花)》는 명품 난초에 관한 도판자료가 풍부하여 참고할 가치가 매우 크다. 오응상(吳應祥)의 《중국난화(中國蘭花)》는 진지하고 과학적인 연구로 중국의 난초연구에 이정표를 새워 난초 애호가들의 많은 환영을 받았고 중국 난초의 보급과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1990년대 들어서자 난초의 재배와 감상에 대한 서적과 잡지는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중 중요한 것을 나열해 보면 오응상(吳應祥)의 《국란습수(國蘭拾粹)》(1995), 진심계(陳心啓), 길점화(吉占和)의 《중국난화전서(中國蘭花全書)》(1998), 오응상(吳應祥), 오한주(吳漢珠)의 《난화(蘭花)》(1999), 류청용(劉清涌)의 《난화(蘭花)》(1991), 《중외난화(中外蘭花)》(1992), 반광화(潘光華)의 《난화(蘭花)》(1999), 정영강(丁永康)의 《중국난예삼백문(中國蘭藝三百問)》(1999), 노사총(盧思聰)의 《중국란과 양란(中國蘭與洋蘭)》(1998), 관문창(關文昌), 주화흥(朱和興)의 《강절난혜(江浙蘭蕙)》(1999), 《난혜보감(蘭蕙寶鑑)》, 양척청(楊滌清)의 《난원만필(蘭苑漫筆)》(2004), 진복여(陳福如)의 《난화병충해진치도보(蘭花病蟲害診治圖譜)》(2006), 장병복(張炳福), 사종의(史宗義)의 《양란절초(養蘭絶招)》 등 100여 권에 이른다. 이 당시에 나온 책은 송대에 《금장란보(金漳蘭譜)》(1233)가 세상에 나온 후 700년 동안의 출판된 난초관련 서적보다도 많은 양이다. 

1987년에는 중국화훼협회 난초분회가 설립되어 난초에 관한 여론을 선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1992년 광동에서 처음으로 《중국난화(中國蘭花)》라는 격월간 잡지가 발간되었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중단된 적이 없어 중국 난초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난화보전(蘭花寶典)》, 《난원(蘭苑)》, 《난혜(蘭蕙)》, 《난화세계(蘭花世界)》, 《난계(蘭界)》 등의 잡지가 정기적 혹은 부정기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2000년 난초의 저변확대를 위해 중국화훼협회 난초분회는 광동성 산토우(汕頭)에서 《중국난화망(中國蘭花網)》이라는 웹사이트를 구축했다. 이후 중국의 여러 성과 시에서 난초 관련 인터넷 홈페이지들이 쏟아져 나와 중국 난초의 발전을 촉진하게 되었다.

정리해 보면, 1980년대 이래 중국의 난초는 다시 창성한 시기를 맞게 되었고 난초 관련 출판물도 많이 생겨났으며 새로 개발된 품종도 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이와 더불어 난초 애호가들도 증가했고 난초 거래시장도 번성해졌으니 역사상 가장 번성시기라고 볼 수 있다. “난초 재배의 번성을 맞으니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21세기에는 중국 난초의 앞날이 더욱 찬란하기를 조망해본다.